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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4 - 나아가 나라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제 군주제를 입헌 군주제로 개혁하고, 의회 를 설립하여 여기에서 외국과의 조약을 감독하고 비준하는 권한을 가져야 열강의 침략을 막고 국민의 자유 민권도 신장된다고 주장하였다. ▲영은문(좌)과 독립문(우) 중국 사신 맞이하던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협회를 세우다 이와 같은 운동의 연계선상에서 1896년 7월 2일 독립협회를 창설하고 그 고문이 되었 다. 독립협회는 국민계몽 및 정치․사회운동 단체로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추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우선 독립협회는 자주독립의 국민적 상징물로서 독립문 건 립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1897년 11월 국민성금을 모아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그리 고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慕華館)을 독립관으로 개수하여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케 하고, 그 일대를 독립공원으로 꾸몄다. 이러한 일련의 행사는 1897년 10월에 있었던 ‘대한제국 선포 및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어우러져 우리나라의 자주독립 을 대내외에 천명하는 한편 민족자존의 기개를 한껏 분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우리나라는 열강들의 각종 이권 침탈에 의해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는 형상이었다. 특히 1896년 2월 아관파천(俄館播遷) 이후 친러․친미 연립정권 이 들어서자 우리 나라의 각종 이권은 열강에게 무더기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러 시아는 함경북도 경원(慶源)․종성(鍾城) 일대의 광산채굴권, 두만강․압록강 유역과 울릉도 의 삼림채벌권, 동해의 포경권(捕鯨權) 등을 빼앗아 갔다. 미국은 경인철도 부설권, 평안 북도 운산(雲山) 금광 채굴권 등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1895년 3국 간섭 당시 러시아와 보조를 같이했던 프랑스는 경의철도 부설권을 획득하고, 그밖에 일본․독일․영국 등도 우 리의 각종 이권을 침탈하고 있었다. 조선 이권 노리는 열강들의 강압적인 요구, 서울 종로 메운 만민공동회로 꺾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