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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9 - ▲서재필선생 동상 ★독립운동가[ 徐載弼 ] 1864.1.7. ~ 1951.1.5. 독립신문의 창간인 “독립은 선전만으로 될 수 없고 허장성세만으로 될 수 없다. 독립의 가장 근본적 요소 는 각성한 민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중교양에 총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천만 민중이 총궐기하여 독립을 부르짖게 되면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1921년 독립운동의 진행방침을 건의한 선생의 장서(長書) 중에서 - 10대 때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와 알게 돼 서재필(徐載弼, 1864 .1. 7~1951.1.5) 선생은 1864년 1월 7일 전라남도 보성군 문덕면 (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서 부친 서광언(徐光彦)과 모친 서주(星州) 이씨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선생의 본관은 대구, 호는 송재(松齊)이다. 당시 선생의 부친은 동복군 (同福郡 : 보성군의 옛 지명)의 군수였고, 모친의 친정 또한 여기에 있었다. 때문에 선생 은 외가가 있던 가천리에서 태어났지만, 곧 충청남도 논산군 구자곡면 금곡리 본가로 보내져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