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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 - 임경업의 수련담을 보면 그는 산신의 도움으로 도술을 얻는다. 그리고 행적담에서는 중국에 잡혀 간 인질을 구출하고, 가시나무로 조기를 잡고, 바다에서 식수를 구하는 등 신이한 능력을 과시한다. 그리하여 결국 그는 비극적인 죽음 이후 연평도의 어업신으로 좌정하게 된다. 그런데 임경업의 경우는 남이(南怡, 1441~1468), 곽재우(郭再祐, 1552~1617)등 당대 의 영웅들과 달리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신격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 특징이 다. 그는 김유신(金庾信, 595~673)처럼 사후에도 여전히 신이성(神異性)을 유지하는 인 물로 묘사되어 있다. 즉 죽음 이후 자신을 모함하여 죽인 김자점의 역적 행위를 임금에 게 알리고, 장끼로 환생하여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기도 하며, 연평도의 어업신이 되어 많 은 이적을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의 바탕에는 임경업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민중의 보상심리가 내재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영웅의 죽음을 부정하고자 하는 민중의 역사인식이 반영된 결과 이다. 하지만 그의 신격화에는 주체성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자리하고 있다. 김유신과 마찬가지로 그는 중국에 대해 주체적인 태도를 표명한 인물이다. 따라서 중국 과의 대립에서 승리한 민족적 영웅이지만 억울하게 옥사하였다는 민중의 주체적인 역사 인식이 투영되어 그를 더욱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영웅으로 신격화한 것이다. 이러한 민중 인식을 기반으로 형성된 임경업장군신은 주로 경기도 지역에서 마을을 보 호하고 풍어(豊漁)를 관장하는 신격으로 모셔지고 있다. 서해안 연평도에는 임경업장군사 당이 있으며, 서해안 지방의 풍어제에서는 임경업 장군의 신령이 불려진다. 충청남도 당 진군 고대면 안섬 마을의 경우 임경업은 본당인 용신(龍神)과 함께 장군당의 신격으로 모 셔지고 있다. 또 과거 이 마을 조기잡이 어선들은 어로 철이 되면 연평도의 임경업장군사당에 가서 풍어굿을 지냈다고 한다. 이를 ‘임장군당 맞는다’라는 이 의례는 어선별로 행하는 풍어제 이다. 풍어굿을 마치면 사람들은 배를 사당을 향해 정박시키고 ‘다오개모탱이’라는 곳에 서 하룻밤을 지냈다. 당일 다른 배들이 아무리 어황이 좋다고 해도 곧바로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하룻밤을 보내면서 임경업장군이 꿈에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풍어에 대한 소망을 기원했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임경업장군신이 흔히 잡귀를 쫓아내고, 병을 낫게 하며, 무병장수와 안과태평 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또한 임경업 장군은 무당들의 수호신이기도 하다. 박수(남자무당)는 무신도 형태로 임경업장군신을 모시며, 만신(여자무당)은 임경업장군신 의 상징으로 ‘고비전’이라 하여 종이를 오려 만든 것을 신당의 벽에 걸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