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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 - 신앙과 사상으로 이어진다. <삼국사기>에 는 화랑도에 대해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 여들어 혹은 서로 도의를 연마하고 혹은 서로 가락을 즐기면서 산수를 찾아다니며 즐겼는데 멀어서 못간 곳이 없다. 이로 인 하여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알게 되고 그 중에서 좋은 사람을 가려 뽑아 이를 조정에 추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러한 화랑의 수양 방법은 노래와 춤을 즐 기고, 산악을 숭배하던 고대의 제천 행사 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고구려에도 ‘조의선인(皁衣仙人)’이라는 관직과 ‘경당 (扃堂)’이라는 교육기관이 있었던 것에 비 추어보면 이러한 전통은 꼭 신라에만 국 한되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최치원은 이처럼 고유 신앙과 사상에 바탕을 두면 서 유교·불교·도교 등 외래 사상의 가르침 을 융합하고 있는 풍류도를 ‘현묘한 도(玄 妙之道)’라고 칭하며, 포용과 조화의 특성 을 지닌 한국 사상의 고유한 전통으로 강 조하고 있다. 나아가 최치원은 유교·불교·도교의 가르 침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지극한 도 (道)에서는 하나로 통하므로 그것들을 구 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진감선사 비문(眞鑑禪師碑文)’에 실린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학자들이 간혹 이르기를 석가와 공자 의 가르침이 흐름이 갈리고 체제가 달라 둥근 구멍에 모난 자루를 박는 것처럼 서 로 모순되어 한 귀퉁이에만 집착한다고 한다. 하지만 시(詩)를 해설하는 사람이 문(文)으로 사(辭)를 해치지 않고, 사(辭)로 뜻(志)을 해치지 않는 것처럼, <예기(禮 記)>에 이르기를 ‘말이 어찌 한 갈래뿐이 겠는가. 무릇 제각기 마땅한 바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여산(廬山)의 혜원(慧遠) 이 논(論)을 지어서 ‘여래(如來)가 주공, 공자와 드러낸 이치는 비록 다르지만 돌 아가는 바는 한 길이며 지극한 이치에 통 달하였다. 겸하지 못하는 자는 물(物)이 겸하기를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하 였다. 심약(沈約)도 말하기를 ‘공자는 그 실마리를 일으켰고 석가는 그 이치를 밝 혔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그 큰 뜻을 아 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더불어 지극한 도 (道)를 말할 수 있다 하겠다.” 이처럼 궁극적으로는 유(儒)·불(佛)·선 (仙)의 가르침이 하나로 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최치원은 유학자이면서도 불교에 도 깊은 관심을 가졌고, 노장사상(老莊思 想)과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등에도 상 당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승려들 과 폭넓게 교류하고, 불교에 관한 글을 많 이 남겼다. 여기에는 ‘법장화상전(法藏和 尙傳)’·‘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석순응전 (釋順應傳)’·‘석이정전(釋利貞傳)’ 등 화엄 종(華嚴宗)과 관련된 것들도 있지만, 지증 (智證)·낭혜(朗慧)·진감(眞鑑) 등 새로 등장 한 선종(禪宗) 승려들에 관한 글들도 포함 되어 있다. 특히 ‘지증대사 비문(智證大師 碑文)’에서는 신라 선종(禪宗)의 역사를 간 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원측(圓測) 과 태현(太賢)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 어 유식학(唯識學)에 대해서도 깊게 이해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교·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