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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8 -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 천의 냇가에 자리잡은 호안림이며 신라진 성여왕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에 조성한 숲이라고 전한다. 당시 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중앙을 흐르 고 있어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다고 한다. 최치원선생이 둑을 쌓아 강물을 지금의 위치로 돌리고 강변에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금까지 이어오는 숲을 조성하였다. 당시에는 이숲을 대관림 이라고 이름지어 잘 보호하였으므로 홍수 의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후 중간부분이 파괴되어 지금같이 상림과 하 림으로 갈라졌으며, 하림구간은 취락의 형 성으로 훼손되어 몇 그루의 나무가 서 있어 그 흔적만 남아있고 옛날 그대로의 숲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상림만이 남아있다. 관광지특성상림의 아름다움은 봄이 신 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 경 등 사철을 통하여 그 절경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여름철 상림은 숲속 나무 그늘 에 돗자리 펴고 누우면, 도심속 신선의 정 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상림의 숲속에 조성되어 있는 오솔길은 연인들과 가족들 의 대화와 사랑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상림에는 120여종의 나무가 있다. 최치원[ 崔致遠 ]선생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 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ㆍ불 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 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 에도 기여하였다. 자(字)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또는 해부(海夫)이다. 고려 현종(顯宗) 때인 1023년(현종 14년)에 내사령(內史令)으로 추증되었으며, 문묘(文廟)에 배향되며 ‘문 창후(文昌侯)’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신라 6부의 하나인 ‘사량부(沙梁部, 지금 의 경주)’에서 6두품의 신분으로 태어났으 며, 오늘날 경주(慶州) 최씨의 시조로 여 겨지고 있다. 하지만 <삼국유사(三國遺 事)>에는 본피부(本彼部) 출신으로 기록되 어 있다. 신라47대 헌안왕(憲安王,재위 857~861) 원년인 857년에 태어났으며, 부친은 38대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 때에 숭복 사(崇福寺) 창건에 참여했다고 전해지는 견일(肩逸)이다. 48 대 경문왕(景文王, 재위 861~875) 때인 868년에 12세의 어린 나 이로 중국 당(唐) 나라로 유학을 떠나, 874년 예부시랑(禮部侍郞) 배찬(裵瓚)이 주관한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하였다. 그 러나 2년 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뤄 양[洛陽] 등지를 떠돌면서 시작(詩作)에 몰 두하여 5수(首) 1권(卷)으로 된 <사시금체 부(私試今體賦)>, 100수 1권으로 된 <오 언칠언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30수 1권 으로 된 <잡시부(雜詩賦)> 등의 시문집을 지었으나, 오늘날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 뒤 876년 선주(宣州) 율수현(溧水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