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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4 - 4 · 19 민주묘지는 1960년 3 · 15 부정선거를 자행한 권력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민 주 영웅들을 모신 묘역입니다. 권력의 총칼에 굴하지 않고 자유 민주 정의의 실현을 위 해 몸을 바친 영령들이 이곳 민주주의 성지의 주인공들입니다. 4 · 19 혁명은 민주적 시위를 통해 독재의 질곡을 물리치고 민의가 반영된 정치체제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선진 사례입니다. 선열들의 정신은 ‘4 · 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는 헌법 전문의 표현대로 동시대인들과 후손들이 이어가야 할 자랑스런 유산이기도 합니다. 1960년 4월 우리나라 헌정사상 최초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위해, 불의의 독재권력에 항거한 4·19혁명이 일어났습니다. 4·19혁명은 한동안 「혁명」 또는 「의거」로 지칭되었으나, 5·16이후에는 「의거」로 공식화 되어 갔다. 그런데 1960년대 말부터는 4·19혁명에 대한 개념이 「4·19의거」에서 「4·19」로 바뀌었으며 4·19혁명에 대한 역사적 가치판단이 정립되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4·19혁명을 연구하는 전공학자들은 「4·19」, 「4·19혁명」등을 혼용해서 썼지만, 중·고 등학교 교과서나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은 「4·19」혹은 「4·19의거」였습니다. 이는 4·19혁명 이후 30여 년간 이 땅에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꽃피우지 못했다는 증거 였으며이 이처럼 오랫동안 「의거」나 「4·19」로 불리우던 4·19혁명에 대한 평가가 1993년 에 이르러 비로소 그 의의와 정신이 재조명되어 「4·19혁명」으로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