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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 -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 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그 규 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 은 융문당(隆文堂)을 포함하여 256칸이고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 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移 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 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안의 전(殿)·당(堂)·누 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 에 방매(放賣)하고, 1917년창덕궁의 내전 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 전·동행각·서행각·연길당(延吉堂)·경성전·연 생전·인지당(麟趾堂)·흠경각·함원전(含元 殿)·만경전(萬慶殿)·흥복전(興福殿) 등을 철 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 당 등을 지었다. 궁전 안에는 겨우 근정전·사정전·수정전 (修政殿)·천추전(千秋殿)·집옥재·경회루 등 과 근정문·홍례문·신무문(神武門)·동십자각 등이 남게 되었으며 정문인 광화문도 건 춘문 북쪽으로 이건하였다.또한, 궁의 중 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앞에 매우 큰 석조 건물인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 히 가려 버렸다. 이 밖에 자선당 자리에도 석조건물이 들어서고 건청궁(乾淸宮) 자리에는 미술관 을 지어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인멸시켰다. 1945년 광복 후 궁은 공원으로 개방되는 한편, 일인(日人)들이 지었던 총독부청사 는 정부종합청사로 활용되다가, 1971년에 궁의 동북 담장 가까이에 지어진 목조기 와건물 모양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에 들어 있던 국립박물관이, 1986년 국립중앙박물 관으로 명칭을 고치면서 이 건물로 이건 되었다.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8·15광복 50주 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으며, 이 자리에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 복 원·낙성되었다. 한편, 일제에 의해 건물이 훼철되는 피해를 입은 경복궁을 복원하는 공사가 1991년부터 침전·동궁·흥례문·태원 전·광화문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20년 에 걸쳐 5단계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고종 당시 지어진 건물의 40%가 복원되고, 일 제에 의해 철거되었다가 1968년에 철근콘 크리트로조 지어졌던 광화문도 원래의 모 습을 갖게 되었다 경복궁의 주요건물 위치를 보면 궁 앞 면에 광화문이 있고 동·서쪽에 건춘(建春)· 영추(迎秋)의 두 문이 있으며 북쪽에 신무 문이 있다. 궁성 네 귀퉁이에는 각루가 있 다. 광화문 안에는 흥례문이 있고 그 안에 개천(開川) 어구(御溝)가 있어 서쪽에서 동 쪽으로 흘러나간다. 어구에 돌다리인 금천 교(禁川橋), 곧 영제교(永濟橋)가 놓여 있 고 다리를 건너면 근정문이 있으며 문을 들어서면 정전인 근정전이 이중으로 높이 쌓은 월대 위에 우뚝 솟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