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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 ▲교태전 명성황후 시해 사건 (明成皇后弑害事件) 청·일 전쟁 중에 조선에서의 내정 개혁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일본의 이노우에 공사는 삼국 간섭에 의해 국제적으로 일 본의 위상이 저하된 것을 계기로 조선에 서의 주도권 행사가 여의치 않게 되었다. '300만 엔 차관' 제공 등의 회유책도 열매 를 맺지 못하고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대 하자 조선에서는 1895년 7월 이른바 친러 파 정권이 성립되었다. 러시아가 일본과 본격적인 무력 충돌을 일으킬 의향이 없 다는 것을 확인한 일본은 조선에서 일본 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조선 주재 공사 를 미우라 고로 육군 중장으로 교체하고 대원군을 이용해 친일파 정권을 부활시키 기 위한 궁중 쿠데타를 획책하였다. 이 과 정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 한국 학계에서는 일본 정부의 지시를 받은 이노우에 공사가 주 범이며, 단순하고 무지한 육군 군인인 미 우라 신임 공사가 하수인인 것처럼 해석 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 은 먼저 일본 정부의 지시 및 교사 여부 는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건의 주범은 당시 조선에 와 있던 일본의 군인 및 외무성 경찰과 외교관, 우익인 현양사 계열의 조선 낭인을 모두 지휘할 수 있었 던 인물인 미우라 고로라고 하는 점이다. 또, 시해 현장에서 직접 하수인으로 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