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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 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수감자들이 늘어나고 계속 지어나가, 나중에는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1), 비르케나우(아우슈비츠2), 모노비츠(아우슈비츠3) 크게 세 부분으 로 나누어졌다. '대량 학살'의 시대 나치는 히틀러(Adolf Hitler)의 과격한 반(反)유대주의를 고취하여 1933년의 정 권획득 후 유대인 박해정책을 추진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하자, 점 령한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을 살해하고 게토나 강제 수용소에 격리하여 열악한 환경하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며, 1941년 이후 수용소에서의 가스 살해나 이 동 말살대에 의한 총살 등으로 유대인 말살작전을 전개했다. 이때의 사망자 수는 600만 명 이상이라고 한다. 수용소에서 학살된 사람의 90%가 유대인이었다. 수용소에서 주된 살해 도구로 사용된 것은 치클론-B라는 독가스였으나, 과도한 노동, 굶주림, 구타, 이유 없이 행해지던 사격, 생체실험 등으로 인해 죽은 이들도 많았다 사죄… 사죄… 또 사죄 반성에 앞장서는 리더 독일이 선진국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끊임없는 사죄가 함께 했다. 리하르트 슈 뢰더 훔볼트대 교수는 "독일은 끊임없는 과거사 반성을 통해 이웃과 공존을 추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