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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 그리고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식구들 의 이름을 모두 써서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초파일 행사에 관민(官 民)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민속행사 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는 불교인들만이 참여하는 행사로 제한되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에는 불교 이외에도 기독교 등 다른 종교가 수용되어 다른 종교에서는 불교적인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데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재래의 사월 초파일이 비단 佛敎的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민속적으로도 큰 명절이었 음은 그날 즐기던 여러 가지 민속놀이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날 온 장안 사람들 이 절을 찾아가서 등을 달아놓은 광경을 구경하였고,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관등의 즐 거움과 더불어 각종 풍악을 울렸으며, 장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다. 한편 이날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콩, 미나리, 나물 등 을 벌여 놓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에 간소한 음식물로 손님을 맞이하여 즐기는 뜻의 놀이 라고 한다. 그리고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데, 이 놀이를 수부(물장구)놀이라고 한다. 이 와 같은 민가의 놀이와 함께 사찰에서는 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신도들은 성불도(成佛圖)놀이와 탑돌이 등 불교민속적 놀이를 행하였다. 특히 어린이날이 따로 없 었던 때에는 이날이 어린이날 구실을 하였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성대한 장이 섰는데, 대부분 어린이 용품이었다. 아이들은 부 모를 따라 절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진기한 장난감을 얻어들고 오는 즐거 운 날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놀이와 행사가 제등행렬로 변 화되었다. 그것은 이전의 관등놀이가 일제강점기에 폐지되었는데, 광복 후에 새롭게 변용 된 행사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은 등행렬에서 각양각색의 등(燈)과 코끼리, 가면 과 풍물패가 어우러져 현대적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음은 지난날의 축제 분위기를 전승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등(燃燈)의 의미도 많이 변하고 있다. 연등이란 등불을 밝히는 것을 말하는데, 오늘 날에는 연등한다는 어원이 변용되어 ‘연등을 단다’로 바뀌었다. 따라서 종전의 연등행사 는 연등을 다는 행사로 바뀌었다. 그리고 각양각색의 등(燈)도 연등(蓮燈)으로 통일되고 있는 추세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어나는 깨끗한 꽃이란 불교적 의미가 강조된 데서 기인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