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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부모형제들이 무참히 대검에 찔리고, 귀를 잘리고, 연약한 아녀자들이 젖가슴을 잘리우고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도 잔인한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너무나 경악스런 또 하나의 사실은 20일 밤부터 계엄당국은 발포명령을 내려 무차별 발포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장을 지키고 우리 부모형제를 지키고 자 손에 손에 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계속 불순배, 폭도로 몰고 있습니다. 잔인무도한 만행을 일삼았던 계엄군이 폭돕니까? 이 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우리 시민군이 폭돕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당국에서는 계속 허위날조, 유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 시민군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또한 협 상이 올바른 방향대로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10·26 반란으로 보안사령관 전두환 小將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浮上하였으며, 12·12사건의 下剋上을 통하여 軍部를 장악하였다. 1980년 2월 29일 김대중 등이 復權되었으나 그 해 봄, 신군부는 최규하(崔圭夏) 過度 정부를 有名無實하게 하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민주주의와 이를 위한 명확한 정치日程 제 시를 拒否하면서 권력기반을 驅逐하고 있었다. 전두환 軍部의 再執權 野慾에 대한 국민적 抵抗은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多樣하게 表 出되다가 강원도 사북사태(舍北事態, 4월 19∼4월 24일)로 대표되는 生存權 문제로까지 擴散되었다. 5월 1일 대학의 학원문제가 校外로 擴散되면서 5월 13일부터 5월 14일에 걸쳐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37개 대학에서 戒嚴撤廢를 요구하는 示威가 벌어졌다.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서 시위가 발생하는 등 학생시위는 서울시가지를 거의 麻痺시 키는 등 夜間까지 持續되어 사태가 絶頂에 달하면서 신군부 세력을 위협하였다. 5월 16 일 24개 대학 학생대표들은 당분간 時局의 推移를 觀望하기로 결정하고 街頭시위를 중 단하면서 小康상태에 突入하는 듯하였다. 5월 17일 신군부 세력이 背後에서 操縱하던 비상국무회의가 以前까지는 제주도를 제 외한 지역에 限定되었던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하는 조치인 계엄포고 10호(17일 24시 에 發效: 각 대학 휴교령 포함)를 밤 9시 40분에 議決하고 밤 11시 40분에 발표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