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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8 - 그것은 희망이고 미래였지만 동시에 부담이고 채무이기도 했습니다. 잃어버린 궤도를 되찾아 남북합의 이행이라는 장정에 복귀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다지는 길 이라 믿습니다. 실질적인 남북합의는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1991년에 맺어진 남북기본합의서를 읽을 때마다 경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탈냉전이라는 시대사적 격변이 몰아치던 초기에 노태우 정부가 보여주었던 리더십에 대해서도 진심 어 린 재평가와 함께 존경을 표합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던 불안한 미래 앞에서 결단하고 엄청난 국내외의 견제와 반대를 이겨내며 만들어 낸 성과였습니다. 1990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을 시작으로 1992년 8차에 이르기까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유엔동시 가입을 하고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발표하고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해내는 과정은 실로 눈부시기 까지 합니다. 이 합의서에서 남북은 당장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공동 인식 아래 상호 인정, 군사적 불가침, 교류·협 력을 통한 점진적 통일을 내외에 천명했습니다. 군사, 경제 교류·협력, 사회문화 교류·협력 등 3개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남북연락사무소 및 남북 화해위원회를 설치·운영하는 데 합의하였고, 남북기본합의서의 구체적 이행을 위한 화해, 불가침, 교 류·협력 등 3개 분야의 부속합의서가 발효되었습니다. 그 많은 결단과 합의들이 당시에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가야할 좌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탄생과 함께 남북이 장구한 평화와 통일의 과정에 동행하는 역사의 장이 시작되 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여전히 난제는 가득합니다. 남북합의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임동원 장관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하였습니다. 국제 질서의 지각 변동, 그리고 그 변동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던 적극적인 외교, 북한의 붕괴론을 손절한 남다른 시각, 이 세 가지가 바로 북방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격한 공감이 있습니다. 90년대 북방정책의 3대 성공 요인은 30년이 지난 오늘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유효합니다. 우리의 판단과 목표와 적극적인 외교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할 이유가 없습니다. 적극적 외교를 보여준 한미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