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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 또 한 분은 통일운동을 하시다가 작 년에 운명하신 김00 고문님의 이야기 다. 부산 대신동골짜기에서 학살당하 고 부산 앞바다에 수장(水葬)되었다. 수소문 끝에 아드님과 통화를 하였 다. 진실화해위원회출범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설명을 하였더니 진실 규명신청을 하겠다고 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하였다. 화순군에서 6명이 비참히 집단학살 당하였던 사건의 유족 박선규광주지부 장은 대장암 투병생활을 계속하다 작 년 7월 결국 운명하였다. 그는 투병 중에도 과거사법재개정투쟁에 死活(사 활)을 다하였다. 아드님에게 연락을 하 여 진실규명신청을 광주동구청에 접수 하게 하였다. 아드님은 아버님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더욱더 애처로운 사연의 주인공이 있다. 96세의 이종금할머니 이야기다. 비극의 한국전쟁은 이종금할머니에게 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렸다. 남편과 친정아버지 작은아버지가 경찰에 의해 학살당하였다. 1기진실화해위원회로 부터 친정아버 지와 숙부는 진실규명결정문을 받았지 만 재판도 하지 못하고 소멸시효가 초과 되어 배상도 받지 못하였다. 정 작 남편은 신고조차 하지 못하였다. 자식이 없으면 못 하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靑孀寡守(청상과수)로 75년을 살아 오셨다. 자식 일가친척이 없어 獨居(독 거) 노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유족회에서는 부산 이춘근상임대표 (부산경남)와 문광현부산지부장에게 연 락을 취하여 진실규명신청서작성을 하 여 부산동구청에 접수를 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구구절절한 애달픈 사연이 줄을 잇 는다. 유족회에서는 刻苦(각고)의 노력 을 다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소식 지와 지역조직. 카페홍보 등 모든 수 단을 동원해보지만 力不足(역부족)이 다. 진실화해위원회가 나설 때이다 3개월이 넘었다. 진실규명신청이 유족들이 눈치를 보 며 遲遲不進(지지부진)하다. 부진한 내 용은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되어있다. 주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