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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8 - 지역유족회 소식 학살은 당시 특경대(또는 흑호대, 기동대 역할을 했던 경찰조직)가 담당 했다. 그 대장을 사람들은 “조벼락”이 라고 불렀다. 본명은 아무도 모르고 1948년 진압당시부터 고흥관내 상당 부분 총살은 이들이 담당했다. 오죽했 으면 “벼락”이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43명이 죽어 골짜기를 따라 작은 하 천에는 붉은 핏물로 변해 흘러 내렸 다. 소식을 들은 유족들은 다음날 오 후부터 달려와 시신을 수습해 갔다. 연고자가 없던 시신은 인근 구천마을 주민들을 동원해 골짜기에 매장했다. 지금은석산이개발되어파헤친 곳이다. 또 한 곳은 그곳에서 2km 정도 떨 어진 곳이다. 고흥군 포두면과 점암면 의 경계지역이다. 이곳에서는 남양 장 담마을 청년 10여명이 집단 총살된 곳 이다. 이 사건 외에도 이곳에서 총살 당했다는 제보도 여러 건 있다. 나도 고향 가는 길이라서 이곳을 지 나가는데, 그렇게 많은 생명이 희생된 곳인지 몰랐다. 8살 때 엄마를 따라와 이 당곡제에서 아버지 시신을 수습했 던 80대 유족은 오늘도 미어지는 아픔 을 토로했다. 이분들의 눈물을 과연 누가 씻어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