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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비 1906년 11월 17일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외교권과 주권을 일제에 빼앗긴 우리 민족의 울분과 설움은 최고조에 이르렀고, 전국적으로 항일의병(抗日義兵)이 일어났다. 이곳 부여군 내산면 지티리(芝峙里)는 을사늑약 이후 일어났던 의병들의 항일 구국운동 가운데 제일 규모가 크고 가장 치열한 항전을 벌였던 홍주의병(洪州義兵)이 일어난 의기(義氣)의 성지(聖地)이다. 1906년 3월 15일 광시(光時)장터에서 일어나 청양(靑陽)의 합천(合川)에서 전투를 치르고 해산된 홍주의병은 1906년 5월 9일 이 곳 지티에서 이용규(李容珪)가 모집한 의병을 주축으로 다시 봉기(蜂起)하여 대규모 항일 무장투쟁의 시발(始發)이 되었다. 지티에서 봉기한 홍주의병은 이조참판을 지낸 민종식(閔宗植)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홍산(鴻山)과 서천(舒川), 비인(庇仁) 관아(官衙)를 점령하고, 남포성(藍浦城) 전투에서 승리한 뒤 광천(廣川)과 결성(結城)을 지나 1906년 5월 20일 홍주성을 점령하는 큰 전과(戰果)를 올렸으나,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구국결사의 신념으로 참가했던 많은 의병이 희생되었다. 전국적인 항일 의병전쟁을 선도하였던 홍주의병 항쟁(抗爭)은 이후 국내외 독립전쟁으로 계승되었고 3.1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오래전 창의(倡義)의 깃발을 높이 올렸던 이곳 지티에 의병봉기기념비를 세움은 구국일념(救國一念)으로 초개(草芥)와 같이 산화(散花)한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순국정신(殉國精神)을 후세에 전하고자 함이고, 이곳의 의병이 봉기한 의기(義氣)의 장소임을 널리 알리고자 함이다. 2021년 11월 26일 부여군수 박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