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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 추정해 최삼현이 허위 의병부대에 가담한 것은 허위의 2차 봉기 때로 추정된다. 허위는 1907년 7월 24일의 정미 7조약(차관정치 시작, 군대 해산 밀약)과 7월 31일의 한국군 해산에 통분을 이기지 못해 의병 6,600여명을 이끌고 경기도 양주에 집결했다. 경상도의 신석돌(申乭石) 등 전국에 이름을 날리던 의병대장들이 망라된 1만여 명이 넘는 부대와 함께 13도 의병대를 조직해 포천, 연천, 양주 등 경기북부에서 일본군 방위망을 뚫고 서울로 진격했다. 그가 1908년 체포돼 교수대에서 순국하기 까지 경기도를 돌면서 계속적인 의병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은 여러 사료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최현삼은 경기 의병 대열에 함께 했고 1909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위세가 약화돼 뿔뿔이 흩어진 무리 속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