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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렬(이재훈)은 1919년 4월 4일 고향인 양양군 도천면(道川面) 중도문리(中道門里) 이종국(李鍾國)의 집에서 태극기 2폭을 제작하고, 부락민에게 이튿날 봉현면(峰峴面) 물치(沕淄)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4월 5일 물치시장에는 수백명의 군중이 몰려들었고, 그는 스스로 제작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지휘하여 인근의 대포(大浦)주재소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6일 하오 1시경에는 수백명의 군중과 함께 양양읍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다 김원식(金元植)·이형우(李炯雨) 등과 함께 체포되어 그해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8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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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렬(이재훈)(李能烈(李載勳), 1888 ~ 1951) 거주 :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중도문리 602(현 속초시 도문동 850) 훈격 : 애족장(1990) 도천면 중도문리 이종국의 집에서 태극기를 제작하고, 마을 사람에게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4월 5일 이능렬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물치 시장에 몰려든 수백 명의 군중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포 순사 주재소로 가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4월 6일에는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양양읍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하여 김원식, 이형우 등과 함께 체포되어, 그 해 6월 14일 경성복심볍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8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