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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범(李國範, 1869~1931) 거주 : 강원도 양양군 도천면 중도문리 604(현 속초시 도문동 848) 훈격 : 애족장(2005) 1919년 4월 4일부터 9일까지 양양군 도천면과 강현면 등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형 이석범으로 부터 만세운동 계획은 들은 이국범은 적극 실행에 옮겼다. 김영경,장세환등과 도천면과 강현면 군중을 이끌며 4월 4일부터 9일까지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1919년 7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범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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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범은 1919년 4월 4일부터 9일까지 강원도 양양군(襄陽郡) 도천면(道川面)과 강현면(降峴面)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 지역의 만세운동은 광무황제 인산에 참례하기 위해 상경하였다가 서울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지니고 귀향한 이석범(李錫範)에 의해 추진되었다. 이석범은 그의 아우인 이국범과 아들인 이능렬(李能烈)을 앞세우고 쌍천학교(雙川學校) 졸업생을 동원한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유학자로서 평소 일제의 강제병합에 분개하고 있던 중, 광무황제의 폭붕(暴崩) 소식을 듣고 군내 양반 유생들에게 양양읍 밖에서 요배식(遙拜式)을 거행하도록 하는 등 항일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한편 형으로부터 만세운동 계획을 들은 이국범은 이에 적극 참여하여 김영경(金英經)·장세환(張世煥) 등과 도천면과 강현면 주민들을 동원하여 4월 4일부터 9일까지 연 6일 동안 읍내 대포(大浦)·물치(沕淄)·왕도(旺道)·기사문(其士門) 등지에서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7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