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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곽낙원(郭樂園) 청년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아들이 수감되자 함께 인천으로 왔다. 객주 박영문과 안호연의 집에 머물며 옷과 밥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하루 세 번 아들의 감옥에 밥을 가져다주며 옥바라지를 하였다. 백범 김구의 중국 임시정부 생활에도 독립운동을 끝까지 지원하고 격려하며 민족의 스승을 길러낸 위대한 어머니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아버지 김순영(金淳永) 아들 김창수(김구)가 치하포사건으로 인천 감리서 감옥으로 이감되자 곽낙원 여사와 함께 이주하여 아들의 옥바라지에 열중하는 한편, 1897년부터 수차례 법무대신 한규설에게 청원서를 올렸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1898년 3월 김창수가 인천 감옥을 탈옥한 이후 대신 감옥에 투옥됐다가 석방된 후, 1901년 1월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