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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38도선 전역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 파죽지세로 남하하여 수도 서울의 최후방어선인 미아리고개를 돌파하고 창경궁 앞까지 다다르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는 거의 1천여명에 달하는 부상장병들이 응급실, 입원실, 수술실은 물론, 병원 복도까지 가득 차 있었고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은 南소위가 지휘하는 국군 1개 경비소대 병력과 육군본부 병참장교 조용일 소령의 지원 하에 있었다. 이후 전세가 악화되어 북한군의 서울함락이 목전에 있었으나 병원 내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피난도 잊은채 오직 환자치료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6월 28일 새벽, 국군 경비소대가 병원 주위를 철통같이 방어하며 완강히 저항하자 북한 괴뢰군 1개 대대병력을 투입하였고, 국군 경비소대는 이곳 뒷산(당시 이곳은 조그만 동산이었다)에서 결사항전 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조용일 소령과 소대장 南소위가 전사하고 선임하사인 閔하사와 나머지 소대원 전원도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이곳 동산이 함락되자 북한군은 병원에 난입하여 입원한 국군 부상 장병들을 밖으로 끌어내어 잔혹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병원에 입원한 일반환자 등 9백여명을 산채로 구덩이에 묻거나 불에 태워 죽이고, 총으로 난사하여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등 천일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다. 바로 이곳이 그 처참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젊은 나이에 나라를 지키고 병월을 지키다 장렬히 산화하신 이름모를 자유전사들 그리고 환자와 그 가족들이 영령 앞에 머리 숙여 명복을 빌며, 1963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이하여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를 건립하여 님들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