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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약력 1944.10.07. 전북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 9번지에서 아버지 김재계와 어머니 권찬주의 3남 2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남 1950.02. 용정국민학교9현 금지동초등학교)에 입학 1956.02. 금지중학교 입학 1959.02. 남원농업고등학교 입학, 한 학기 마치고 자퇴 1960.03.10.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마산시 장군동 이모할머니 집으로 옴 03.11. 입학시험 03.15. 형 광열과 함께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항거한 마산시민들의 의거에 참가하였다가 이날 밤 8~10시 사이 마산시청 부근 남전마산지점(중앙동 소재 무룹병원) 앞에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함. 경비 주임 박종표 등 경찰이 확장공사 중이던 제1부두 앞바다에(현.국화축제장소) 유기하여 행방불명으로 처리됨 03.16. 형 광열이 마산상고 합격증을 받음 03.18. 어머니 권찬주 여사가 마산으로 달려와 아들 주열이를 찾아 달라며 시민들에게 애절하게 호소, 이로써 김주열의 행방에 마산은 물론 전 국민들 관심이 집중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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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 실종 27일 만에 어머니 권찬주 여사가 아들 주열을 못 찾고 남원으로 귀향하던 그 시간, 오전 11시 30분경 마산시 신포동 중앙부두 앞 바다에서 최루탄이 오른쪽 눈에 박힌 변사체로 발견됨. 이날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4.11민주항쟁(마산2차의거)이 일어남 04.13. 도립병원(현 마산의료원)에 안치된 시신을 밤 11시경 경찰이 시민들 몰래 빼돌려 남원으로 향함 04.14. 고향 남원시 금지면 옹정리 우비산에 묻힘 04.19. 4월 11일, 김주열의 참혹한 시신이 바다에 떠오른 모습과 마산의 4.11항쟁이 전 국민에게 알려지면서 마침내 4.19혁명이 일어남 1995.04.11. 마산상업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용마고37회)을 받음 1999.01.05. '김주열열사추모사업회 추진위'가 발족되면서 열사로 추존. 이후 공식화됨 1999.03.14. 3.15의거 이후 39년 만에 처음으로 마산시민들(마산시민과 학생 70여명)이 남원묘소를 공식적으로 참배 2010.04.11. 열사의 시신인양지에서 50년 만에 '김주열 열사 범국민장'을 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