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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23일 소라면에서 일어난 전국최초 면장민선운동은 일제의 식민통치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당시 신문에도 크게 보도되어 전국적인 이목을 끌었으며, 이에 자극을 받아 1930년년대까지 여수는 물론 전국에서 활발하게 면장민선운동이 전개되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앞장선 광주고등보통학교의 노병주, 전남사범학교의 곽찬신, 동년 12월 서울중동학교 동맹휴교를 주도한 김형석 등도 여수출신이다. 1930년대에도 여수의 학생, 청년들은 여수독서회, 여수사회과학연구회, 여수청년전위동맹 등 단체를 결성하여 항일운동에 나섰다. 1931년 여수수산학교 독서회사건과 1928년부터 5년 동안 진행되었던 여수적색노동조합사건(1933년 8월)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1940년대에도 여수에서는 항일운동이 이어졌다. 1942년 여수수산학교 학생들은 일본인 교사의 모욕적 처사에 분개하여 징병불을을 내세우며 투쟁을 벌였으며, 여수의 장로교인 강병담, 김순배, 손양원, 이기풍 등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였다. 이이에도 돌산의 소년 항일지사인 주재년과 일본 동경에서 활동한 최완규등 많은 인물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여수에서는 1900년대부터 각 방면에서 항일운동이 꾸준히 전개되어 조국의 광복에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