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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 이강년의 한말 의병항쟁과 고모산성
고모산성은 한말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하여 의병항쟁에 나선 운강 이강년 선생의 전적지이다. 운강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이를 비통히 여겨 1896년 2월 23일 향리에서 창의하였다. 창의 후 운강은 농암장터(현 농암면 개바위)에서 단발령에 앞장선 안동부 관찰사와 순검 2명을 처단하였다. 이때 운강은 6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모곡(마성면 모곡리)을 거쳐 1896년 2월 26일 밤 고모산성으로 진군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였다. 고모산성은 태봉(함창읍 태봉리)과 수안보에 주둔한 일본군의 병참선상에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1896년 2월 27일 새벽 일본군과 관군의 기습공격으로 6시간에 걸친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과부적으로 패배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러나고 말았다. 이 전투로 말미암아 고모산성 안팎의 마을들이 모두 불에 타고, 지금도 그 흔적이 입구의 느티나무에 남아있다. 1907년 7월 일제가 강제로 문경으로 진군한 운강은, 신현(마성면 신현리)에 지휘소를 두고 고모산성에 방어진을 설치하였다. 이후 약 일주일 동안 문경새재, 갈평, 동로 적성에서 전투를 벌였다. 갈평에서는 일본군 1개 소대를 괴멸시키는 전과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