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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률 도원수 동상 중종 32년(1537)생. 자 언신, 호 만취당, 본관 안동, 영상 철의 아들. 46세에 문과에 급제, 승문원 정자 예조 정령등을 거쳐 의주목사로 있을 때 임란이 일어나자 특별 천거로 광주목사를 맡아 남하하였다. 충청.전라.경상 삼도대군의 용인 적영공격에 참가 북진하려고 하였으나 패전으로 끝나자, 돌아가 민병을 소모, 이치로 나아가 영남에서 호남으로 넘어들려는 왜병을 꺾어 전라도를 임란 회복의 근거로 확보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7월 나주목사, 전라도 순찰사로 승인되어 9월에 군을 다시 이끌고 북상, 수원 독산성에 진치고 적후병을 견제교란하였다. 익년 2월에는 평양성 수복 후 남하하는 조명 연합군과 호응 고군을 이끌고 바로 이 행주산성에 진주하여 밀려오는 적을 격전전투로 대파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적이 서울에서 물러가지 않을 수 없게 하였으며 공으로 도원수로 승인되었다. 6월 정유재란에는 명군과 연합 특히 울산, 순천등지에서 적을 섬멸하려고 하였으나 임란 때와같이 명군의 강화강행으로 끝내 듯을 이루지 못하였다. 선조 32년(1599)에 별세하였으며(63세, 선무 일등공신, 충정공) 뛰어난 문무겸비의 명장으로 길이 추앙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