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page


42page

1879 :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부 韓應俊(한응준)의 차남으로 출생, 속명은 貞玉(정옥),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 184~1897 : 향리에서 한학 수학 1892 : 천안 전씨와 결혼 1899 : 강원도 설악산의 백담사 등지를 전전 1904 : 귀향하여 향리에서 수개월간 머물다 1905 : 백담사 김연곡 스님에게서 득도. 김영제 스님에 의하여 수계. 이후 이학암 스님으로부터 〈기신론〉, 〈능업경〉, 〈원각경〉 등을 사사받음 1908 : 4월경 일본으로 건너가 下關(하관) 등지를 순유하고 동경의 曹洞宗(조동종) 대학에서 불교와 서양철학을 청강함. 10월경 귀국 1910 : 〈조선불교유신론〉 탈고(1913년 불교서관에서 간행) 1912 : 불교경전 대중화의 일환으로 〈불교대전〉을 편찬하기 위해 양산 통도사의 고려 대장경을 열람함 1913 : 불교강연회 총재에 취임. 박한영 등과 함께 불교 종무원을 창설. 통도사 불교강사에 취임. 〈불교대전〉을 국한문으로 편찬(1914, 홍법원) 1918 : 월간 교양지 〈惟心(유심)〉을 발간하여 편집인 겸 발행인이 됨 1919 : 1월경 최린, 현상윤 등과 조선독립에 대해 의논함.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의 자구 수정을 하였으며 〈공약 3장〉을 추가함. 3월 1일 명월관 지점에서 33인을 대표하여 독립선언 연설을 하고 투옥됨. 7월 10일 〈조선독립의 개요〉 제출 1926 : 시집 〈님의 침묵〉을 회동서관에서 발행 1927 : 신간회 중앙집행위원 겸 서울지부장에 피선됨 1931 : 1931 김법린, 최범술 등이 조직한 승려비밀결사인 卍黨(만당)의 영수로 추대됨 1933 : 유숙원과 재혼. 벽산 스님, 방응모, 박광 등의 도움으로 성북동에 尋牛莊(심우장)을 짓다. 여기에서 소설 〈흑풍〉, 〈죽음〉 등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다. 1944 : 월 6월 29일 심우장에서 이적. 미아리에서 화장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히다 1962 :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重章(중장)이 수여되다 1967 : 〈용운당 만해 대선사비〉가 파고다 공원에 건립됨 1973 : 〈한용운 전집〉(전 6권)이 신구문화사에서 간행됨 만해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