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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학응거(勉學應擧) 5세 글을 배우기 시작하여, 7세에 시(詩)를 짓고, 14세 승보시(陞補試)에 장원하다. 21세 생원·진사 회시(會試)에 합격하고, 23세에 성균관에 유학하다. 24세 무자(戊子) 문과(文科) 갑과(甲科) 제2인(弟2人)으로 합격하다. 이때 독권관(讀券官/殿試試驗官)들이 서로 ‘조정이 인재를 얻었다’고 축하하다. 35세 문과(文科) 중시(重試)에 장원(壯元)하다. 55세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과 몇 날을 머물면서 ‘경서와 예서’를 강론하다. 한강 선생이 그의 문인들에게 말하되 ‘농포옹이 어찌 시인(詩人)일 뿐이겠는가.’하면서 선생의 깊은 학문을 크게 칭찬해 마지않다. 몰후43년 지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의 3직 겸임(兼任)을 특증(特贈)하여, 문형(文衡)의 영예를 얻다. 관직출사(官職出仕) 25세 승정원주서, 승정원정자, 홍문관수찬, 사간원정언 겸 중학교수. 26세 지제교(知製敎),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내다. 27세 함경북도병마평사에 임명되다. 임진전쟁 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함경도를 수복하다. 혹자는 선생의 공적을 북방을 개척한 고려의 윤관, 조선의 김종서와 같다 하다. 37세 가선(嘉善) 계급에 올랐다. 예조참판(禮曹參判)에 제수되다. 46세 사은부사(謝恩副使)로 명(明)나라를 다녀오다. 48세 이후 형조참판 병조참판 등 중앙 요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다. 55세 창원부사, 59세 전주부윤을 지내다. 60세 인조 2년(甲子) ‘초회왕(楚懷王)‘의 시화(詩禍)로 억울하게 옥사하다. 몰후43년 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 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 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오위도총부도총관을 특증(特贈)하다. 몰후90년 시호(諡號)를 충의(忠毅)라 하다. 三. 북관대첩비 건립자 북관대첩비 이모비를 경상남도와 진주시가 함께 세우다. 북관대첩비 국역비를 해주정씨대종친회에서 세우다. 모든 사람이 공경으로 이 글을 상시 그리고 쉽게 읽어 그 뜻을 깊이 새기도록 북관대첩비 이모비와 국역비를 건립하여 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13년 11월 일 北關大捷碑 移模碑 및 國譯碑 建立 推進委員會(북관대첩비 이모비 및 국역비 건립 추진위원회) 委員長 鄭泰瑥(위원장 정태온) 委員 鄭泰浩 委員 鄭南根 委員 鄭守燮 委員 鄭文丈 委員 鄭基敏(위원 정태호 위원 정남근 위원 정수섭 위원 정문장 위원 정기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