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page


172page


172page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지방에서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공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북평사(北評事) 최창대(崔昌大)가 1709년(숙종 35) 10월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臨溟)에 세웠다. 그런데 1904년 러·일전쟁 당시 함경도에 주둔한 일본군 제2사단 17여단장 이케다(池田正介)소장이 임명역에서 이 비석을 발견하여, 일본으로 반출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대륙 진출을 꿈꾸는 일본군 앞에 이 비석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에 1905년 사단장 미요시(三好)중장이 귀국시 일본으로 강탈해 갔으며, 그 이후로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소앙(趙素昻) 선생이 일본 유학시절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이 비석을 처음 발견하고 느낀 소감을 대한흥학보(1909년)에 게재하여 일본 내에서 이 비의 행적은 확인되었다. 이후 1978년 우연한 기회에 이 자료를 발견한 최서면(崔書勉) 선생이 신사에서 이 비석을 찾아내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