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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홍기(1895~1919) 함홍기 열사는 손양면 가평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양양군의 3.1만세운동사는 물론 전국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의 의로운 죽음으로 일제의 폭압에 온몸으로 항거한 열사이다. 1919년 4월 1일 양양군 각 면 책임자들이 임천리 이교완의 집에 모여 4월 4일 양양장날 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4월 3일 모의 사실이 양양군수에게 발각되어 만세운동을 추진하고 있던 주모자급들이 체포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운동은 계획대로 실행에 들어갔고, 장날이었던 1919년 4월 4일 만세운동 낌새를 사전에 알아차린 일경은 장터를 폐쇄하였다. 하지만 함홍기 열사는 아침부터 손양면 사람들을 추동해 주민들과 양양장터로 향하는 행군대열을 선도하여 남대천 다리에 이르니 그곳에는 이미 일경들이 막아서고 있었다. 일경과 대치하다가 동운교를 건널 수 없게 되자 동운교 위아래로 분산하여 물을 건너 양양장터에 들어가 각면에서 모인 수많은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다가 군중을 인솔하여 결찰서로 달려간다. 함홍기 열사는 경찰서장실로 들어가 경찰서장에게 전난 임천리에서 잡혀온 22명의 석방을 요구했다. 요구가 거절당하자 경찰서장을 꾸짖으며 화로를 집어 던지려고 하며 거세게 항의하다 일본 순사의 칼에 양팔이 잘리고 목에 칼을 맞아 현장에서 장렬하게 순국했다. 대한민국 3.1만세운동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