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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 일제강점기 경기도 지역 기념물 (기념탑 및 동상 포함) 조사 정리 카드 명칭 1 경서 노고산 천골취장비 양주(구리) 명칭 2 건립시기 1938년 9월 건립위치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교문리 (망우리공동묘지) 현 소재지 경기도 구리시 교문동 산84번지 (망우리공동묘지) 사진자료 관련자료 - 『동아일보』 1935년 8월 24일자, 「굴총문제로 일시 대난투, 묘(墓) 백여장 파고 묘주(墓主) 에게 혼나, 비난받는 노고산보관회(老姑山保管會)」 고양군 용강면 수철리(高陽郡 龍江面 水鐵里) 주민 수백 명은 지난 21일 부근 노고산보관회 (老姑山保管會) 개간공사장에 몰려들어 치고받고 하는 동안 소관 동막주재소(東幕駐在所)원이 달려가 일동을 검거하는 등 일대 소동을 일으켰다는데 내용을 들어보면 전기 노고산보관회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노고산 속에 있는 분묘주(墳墓主) 30여 명이 자기들의 선영을 위하 여 원래 관유지이었던 것을 불하하여 그 안에 있는 분묘를 보호하여 오던 중 최근 수 년 전 부터는 그 토지 20여만 평을 묘지로만 둘 것이 아니라 밭과 주택지로 개척하는 것이 유리하 다 하여 밭으로 개각하기를 시작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그동안 부근 주민들과 늘 분쟁이 되어 오던 중 수일 전부터 그 일부에 산재한 토막민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 계속하여 그 부근 일 대를 밭으로 만들고자 전기 보관회 주임 송달섭(宋達燮) 등 몇 사람이 인부 15명을 시키어 분 묘 백여 장을 파서내자 이것을 안 묘주(墓主) 백여 명은 현장에 달려가 그와 같이 된 것이라 는데 전기 송달섭과 인부들은 전부 도망하였다 하며 소관 용산서(용산서)에서도 문제를 해결 시키고자 노력중이나 일반 묘주들이 분개히 생각하여 여러 가지로 항쟁하는 까닭에 문제가 매우 복잡하게 될 모양이라고 한다. - 『조선중앙일보』 1935년 8월 25일자, 「신수철리 노고산의 백여분묘 발굴소동, 산주(山主)와 묘주(墓主) 간 공기 일시 험악, 묘주들은 고소준비」 - 『조선중앙일보』 1935년 8월 25일자, 「보존회 조직 본의는 주민의 선영안장(先塋安葬), 철 원 박씨 참가후에 개간설(開墾說)있다가 마침내 여차 불상사」 - 『조선중앙일보』 1935년 8월 25일자, 「이사회 열렀단 말도 못 들었소, 보존회 임원 이만재 (李滿宰)씨 담(談)」 - 『조선중앙일보』 1935년 8월 25일자, 「발굴이 아니라 개간한 것이요, 송달섭(宋達燮) 씨 담 (談)」 비고사항 -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지역이었던 상봉리, 중화리, 묵동리, 망우리, 신내리가 1963년 1월 1 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고, 1980년 4월 1일 양주군에서 남양주군이 분리 신설되면서 기존의 구리읍은 남양주군 관할로 변경 (1986년 1월 1일 남양주군 구리읍이 구리시로 분리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