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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김서규 金瑞圭 : 1875~1935 중추원 참의 · 도지사 1875년 11월 충청남도 부여 출생 1902년 4월부터 1903년 3월까지 외부 견습생 1903년 3월 관직생활 시작, 8월까지 대한제국 외부 주사 1904년 2월 동래감리서 주사, 9월 부산항재판소 판사서리 1905년 4월 옥구감리서 주사, 6월 동래감리서 주사, 11월 옥구감리서 주사 1906년 2월 창원감리서 주사, 11월 성진부 참서관, 12월 성진부 참서관 겸 성진항 재판소 검사 등 주로 개항장의 행정과 통상 사무를 관장하던 감리서에서 근무 1908년 1월 함경북도관찰도 사무관, 5월 사무관으로서 함경북도관찰사 사무 서리 1911년 3월 함경남도 영흥군수 1912년 10월~1922년 5월 함경남도 안변군수 안변군수로 재직 중이던 1917년 8월부터 1918년까지 함경남도 지방토지 조사위 원회 임시위원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 1915년 11월 다이쇼(大正)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 1921년 3월 훈6등 서보장 1928년 11월 쇼와(昭和)천황 즉위기념 대례기념장 1929년 3월 훈4등 서보장 1929년 5월 조선박람회 평의원 1929년 12월 전라북도지사 1930년 12월 수양단조선연합회본부 평의원 1931년 9월부터 경상북도지사, 11월 훈3등 서보장 1933년 1월 1일자 『부산일보』에 “각종 교화운동을 기회로 지방농산어촌진흥을 위해 나서야” 하며, “국민작흥과 농촌진흥의 방책은 만전 노력하여 당국에 협조” 하는 것이라는 연두사를 발표 1933년 10월 조선신궁봉찬회 발기인(대구), 결성 뒤 고문 겸 경상북도지부장 활동 1934년 4월 경상북도국방의회연합회 회장, 8월 조선총독부 임시치수(治水)조사위원 회 위 원 1935년 4월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주임관 대우 참의, 8월 사망 때까짖 ㅐ임 하면서 1,800원 수당 받음 1935년 8월 17일 중추원참의 재임 중 사망 [참고문헌] 『大韓帝國官員履歷書』 ; 『舊韓國官報』 ; 『朝鮮總督府官報』 ; 『朝鮮總督府 及所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