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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 판에, 12월에는 경상남도 양산에서 농민조합 간부들이 소작료인하운동을 전개하 다 체포되자 경찰서로 달려가 조합 간부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 군중을 지휘 하다 체포된 김태근(金泰根)의 재판에 판사로 참여 1933년 5월에는 전라남도 완도를 중심으로 각종 강연회를 개최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고 취하는 동시에 일본의 조선어말살정책을 비판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비밀결사인 신우회(信友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된 김병규(金柄奎) · 이 응길(李應吉) 등의 재판에, 6월에는 전라남도 제주에서 일본의 식민통치를 거부 하고 만인평등의 공산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혁우동맹(革友同盟)이라는 비밀결사 를 조직하고 야학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김한정(金漢貞) · 안구현(安 九玹) · 신재홍(申才弘) 등의 재판에, 9월에는 전라남도 목포를 중심으로 동맹 파업을 지도하는 등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한 혐의로 체포된 김상만(金相萬) · 임대수(林大洙) · 임중술(林仲述) 등의 재판에 판사로 참여 1934년 3월에는 전라남도 영암을 중심으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김판권 (金判權) · 곽명수(郭明秀) · 유용희(柳龍羲) 등의 재판에, 4월에는 공산주의 사상의 보급과 선전을 목적으로 팸플릿을 제작해서 배포할 것을 협의하는 등 공 산주의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조동빈(趙東玭)의 재판에, 5월에는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인 흑색청년자유연합(黑色靑年自由聯合)을 조직하고 무정부주의 연구와 동지 확보 등을 위해 활동하다가 체포된 김창신(金昌臣) · 김중문(金重文) · 김덕기(金德基) 등의 재판에, 7월에는 전라북도 부안 일대에서 사회주의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김한동(金漢童)의 재판에 판사로 참여 1934년 7월 공주지방법원 강경지청 판사 1935년 8월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 판사 1936년 12월 고등관 5등으로 승급 1937년 2월 종6위에 서위 1937년 4월 훈6등 서보장 1938년 7월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 판사 1940년 6월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판사 1942년 4월 정6위에 서위 1942년 6월 고등관 4등 승급 1942년 9월에 훈5등 서보장 1944년 3월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 판사 1944년 5월 “육군특별지원병 입영과 관련하여 경성 부민관에서 열린 연설회에서 한 학 생이 조선인이 바라는 것은 조선의 독립이라고 말하여 박수를 받았다.”고 이야 기한 혐의로 체포된 박종운(朴鍾云)의 재판에 판사로 참여 1945년 7월 퇴직 1951년 3월 경상북도 대구에서 변호사 개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