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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 - ○ 광주에 제사공장이 들어선 후 가네보는 방적공장 설립을 구상 ○ 1934년 3월 가네보는 임업시험장과 논밭이었던 하야시초(林町)를 부지 로 선정 하고 공사에 들어가 총 10만평 부지에 방적공장 55,000평과 기타 위락시설 등 을 조성, 1935년 8월 공사 마무리 ○ 당시 시민위락시설의 하나로 수영장이 문을 열었고, 이어서 식물원과 동물원, 공설운동장도 만든다는 계획이었으나 전시체제에 들어서면서 무산됨 ○ 공장에는 2,500여 명의 여공들이 근무하였는데, 가혹한 노동환경 속에 서 저임 금으로 고생 가네보의 시민공원 보트장 (1933) 수영장 (1946) 당시 공장 내 작업장 모습 [출처 :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사] ○ 1945년 8월 광복 후 박무길[朴武吉, 전남사범학교 출신 독립운동가] 등 종업원 들이 공장자치위원회를 구성해서 9월에 공장 가동을 시작 ○ 1945년 11월, 미군정이 적산 접수에 착수하면서 당시 미군정 통역관이었던 김 형남을 공장 책임자로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