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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 - 1937년 광주공립심상고등소학교(중앙초등학교)에서 펴낸 '광주향토 독본'에 실린 신사참배에 관한 글 오는 15일은 신사 자유 참배일이다. 동창이 점차 밝을 무렵 한 사람이 일어나 참 배를 하였 다. 일대에 막 피기 시작한 벚꽃도 여명의 안개에 둘러싸여 어렴풋하였다. 토리이 (鳥居)를 지 나 두 번째 돌계단을 올랐다. 참배 온 사람, 돌아가는 사람이 깔아 놓은 작은 자갈들 이 사박사 박 소리를 냈다. 왼편에는 오촌오백자(奧村五百子) 도자(刀子)의 동상을 보며 세번째 의 돌계단 을 올랐다. 어수세(御手洗 - 신사 입구의 참배자가 손을 씻는 곳) 에서 손을 씻고 입을 헹구 고 나아가 와즙(瓦葺 - 카와 라부키 : 기와로 인 지붕), 유조(流造 - 나가레쯔쿠리 : 지붕에 물 매를 두어 전면을 뒷면보다 길게 경사지게한 신사 건축의 한 양식)의 배전(拜殿)에 공손히 절 하였다. 배전의 안쪽에 울타리를 둘러싼 동판 지붕 신명조(神明造 : 신사 건축양식의 하나 이며 지붕 은 박공식이고 중앙에 계단이 있으며 기둥은 땅을 파서 세운 양식)의 본전(本殿)이 있다. 게다 가 이웃하여 어태도(御太刀), 어순(御楯) 등을 넣어둔 보물전이 있었다. '광주신사(光 州神社)'의 편액은 제2대 총독 장곡천(長谷川. 하세가와)의 글씨였다. 신사의 격은 내지(일본)의 부현사(府 縣社)에 상당하였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 광주공원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지금 겨우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광주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눈 아래 맑게 흐르는 광주천이었다. 좌우 송림의 나 뭇가지 끝 사이로 간신히 보이는 충혼비, 5중의 탑, 멀리 맞은편 종방(鍾紡) 전남공장 굴뚝의 연기가 완 만하게 오르는 것도 보였다. 신사가 이곳에 진좌한 것은 1917년(대정6년)이었다. 지금에는 봄, 가을 2회의 대제 를 시작으 로 크고 작은 각종의 제사가 행하여진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대제일은 물론이고 1 일, 15일에 는 필히 참배하였다. 걸음을 돌려 돌계단을 내려왔다. 동상 앞을 통과할 때, 금융조합의 기념비를 왼편 으로 쳐다 보며 지나쳤다. 민가 사이를 지나 대나무 숲을 통과하여 소나무 숲을 빠져나와 언덕으로 연결되 는 구 공원 으로 향하였다. 구 공원과 광주신사 경내 부근을 합쳐 광주공원이라 부르고 있었 다. 우리가 아침, 저녁으로 산보하는 길이었다. 전망이 좋은 정상에는 전망대 설치도 하여, 정말로 부민의 유람지였다. 올라가 전 시를 내려 다 보면, 우리 광주는 이미 하루 활동을 시작하여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시장 으로 향하 는 차, 달리는 자전거도 힘차고, 왕래하는 사람 수도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오른쪽 아득하게 멀리 무등연봉을 감싼 아침 안개도 시시각각 밝아져갔다. 엉겁 결에 꿀꺽 대기를 깊이 빨아들였다. 때마침 신광주역 방향에서 한 번의 높은 기적 소리가 울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