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page

- 113 - (1) 광주향교비각중건기(光州鄕校碑閣重建碑) ○ 관리번호 : 비석 8호 ○ 내용 : 철종 5년 갑인(1854년)에 문묘를 중수하면서 각을 세워 모두 7 기의 비 석을 세웠는데 향교 사적비에 제일 먼저 언급된 분이 고봉 선생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비각이 쓰러지고 비석의 머리에는 이끼가 끼고 받 침돌에는 잡초가 자라는 지경에 여론이 제발하여 의연금을 각출, 4칸 의 일자 건물에 단청까지 하고 비석 7기와 곁의 한 칸에 중건기념비를 세우면서 향후 100년을 기약한다. ○ 지은이 : 1935년 전 장례원경 박봉주(朴鳳柱,1868~1936) 박봉주 朴鳳柱ㅣ1868~1936 중추원 참의 1868년 12월 전라남도 광주 출생 1899년 12월 홍문관 시독(侍讀)으로 관직에 진출 1900년 1월 중추원 의관, 7월 비서원승을 거쳐 1904년 12월 내장원경 1905년 6월 봉상사 제조, 사직서 제조, 궁내부 특진관, 장례원경 등을 거친 뒤 다 시 1907년 2월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 1909년 1월 일본인 경찰 · 검찰과 친하게 지내며 나라를 팔아먹는 자라는 이유 로 의병에 게 납치되었다가 탈출 1919년 9월 조선총독부가 주도한 조선농사개량주식회사에 발기인으로 참여 1920년 2월 전라남도 송정금융조합 조합장, 3월 호남물산주식회사 취체역 1921년 4월 전라남도지사의 추천으로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주임관 대 우 참의에 임명되어 1924년 4월까지 재임하면서 매년 600원의 수당 받음 1922년 2월 전라남도 유도창명회를 결성할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3월에 부회 장에 선출, 전남도시제사(全南道是製絲)주식회사 대표취체역, 6월 주식회사 전남번영회 대표취 체역 1923년 5월 조선민립대학기성회 광주지방부가 창립되자 집행위원으로 활동, 10월 전라남도 유도창명회 광주지회장 선출, 호남물산주식회사 감사역, 11월 전라남도 유도창명회 회장 1923년부터 1920년대 말까지 조선기업주식회사 상무이사와 감사 1924년 신일본주의를 내세우며 참정권운동을 전개하던 국민협회의 전라남도지부 회원으로 활동 1929년 10월에는 유교단체 대성원(大聖院) 전남총지원 지원장으로 활동 1936년 9월 29일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