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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참변 청산리대첩 후 독립군들은 북만주의 밀산을 거쳐 러시아의 도움을 기대하며 1921년 초 이만에 도착했다. 이만에서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사를 비롯한 일부 독립군단의 독립군들은 러시아의 원조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북만주로 돌아왔다. 반면 홍범도, 지청천,안무,최진동등이 이끄는 독립군들은 그 해 3월 자유시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들 독립군들은 자유시의 독립군단인 대한의용군과 고려혁명군의 세력다춤의 와중에 갈등을 겪게되었다. 게다가 일제의 압력을 받은 러시아측은 독립군을 무력화하기 위해 무장해제를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주지역 독립군이 가담한 대한의용군과 고려혁명군 간에 대충돌이 일어났다. 이 '자유시참변'으로 수백 명의 독립군들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었고, 420여 명의 독립군들이 러시아군에 붙잡혀 수감되거나 강제노동에 시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