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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관 '겨레의 시련' 후문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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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는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지방에서 정문부가 이끄는 의병부대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공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북평사(北評事) 최창대(崔昌大)가 1709년(숙종 35) 10월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臨溟)에 세웠다. 그런데 1904년 러·일전쟁 당시 함경도에 주둔한 일본군 제2사단 17여단장 이케다(池田正介)소장이 임명역에서 이 비석을 발견하여, 일본으로 반출하고자 하였다. 아마도 대륙 진출을 꿈꾸는 일본군 앞에 이 비석은 사기를 떨어뜨리는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에 1905년 사단장 미요시(三好)중장이 귀국시 일본으로 강탈해 갔으며, 그 이후로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소앙(趙素昻) 선생이 일본 유학시절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이 비석을 처음 발견하고 느낀 소감을 대한흥학보(1909년)에 게재하여 일본 내에서 이 비의 행적은 확인되었다. 이후 1978년 우연한 기회에 이 자료를 발견한 최서면(崔書勉) 선생이 신사에서 이 비석을 찾아내 비로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78년 해주 정씨 문중에서는 한일친선협회를 통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측에 처음으로 비 반환을 요청하였고, 1979년 한국 정부의 비 반환 공식 요청에 일본 정부는 원소재지인 북한과의 합의가 있으면 반환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 후 계속된 반환 요청에도 일본 정부는 북한과의 합의가 필요하며 당시 점유자였던 야스쿠니 신사에 강제 반환을 요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혀 반환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민간차원의 지속적인 반환 노력으로 2005년 3월 남측의 한일불교복지협회(초산스님)와 북측의 조선불교도연맹(박태화) 간의 비 반환에 관한 남북합의서가 체결 되었고, 같은 해 6월 한일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총리가 반환에 합의하였다. 2005년 10월 20일 일본으로 반출된 지 100년 만에 비가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 앞마당에서 환국고유제를 지내고 10월 28일부터 11월 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1층 로비에 머릿돌이 복원되고 보존 처리가 된 북관대첩비가 조립되어 전시되었다. 그렇게 전시되어 있던 북관대첩비는 2006년 3월 1일, 북한 개성으로 이관되어 인도인수식을 가졌다. 2006년 3월 23일 북한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에 복원된 북관대첩비는 현재 북한 제193호 국보유적으로 등록되어 역사적 가치를 되찾았다고 한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