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page

1. 하늘에서 본 무악재와 옥바라지 3. 옥바라지 골목의 풍경 3.2 옥바라지 골목의 모습 3.3 무악재의 기억과 흔적 3.4 가족들에게 바치는 헌정 3.1 초가집의 작은 셋방 2.3 바느질 무악재는 인왕산과 안산 사이, 현저동과 홍제동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 다. 의주와 통하는 중요 교통로이자 서울 시내와 서대문 외곽을 잇는 위 치에 있어 조선시대에는 영은문과 모화관을 세워 중국사신을 맞이하였 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문을 건립했다. 조선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1900~1930)이 개벽 1923년 1월호 「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에서 무악재의 풍경을 서술한 글과 영상, 사진으로 무악재의 풍경과 역사를 소개 안창남 (1900~1930) 조선 최초의 비행사 <바느질 콜렉티브_옥바라지> 참여작가 : 고은경, 김명희, 김소연, 김수영, 김홍주, 박미자, 신현정, 옥정원, 유미정, 유 재향, 이은주, 정민경, 정민기, 정연화, 정영 인, 정영희, 정희기, 홍미숙 기획 : 최재원 양달석 <망향>1950년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외롭게 삶을 이어가야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보급형 사기그릇 일제가 놋그릇을 수탈하고 공장제 사기그릇을 보급 숯다리미와 인두 불을 피운 숯을 담아 인두를 달구어 옷감을 다림질을 하는데 사용 밥 찍는 틀 서대문형무소에서 사용한 밥틀로 받침과 두께를 달리 하여 밥량을 조절 <아모르프 AMORPH> 김윤철 글리세린, 물, 엘이디(LED) 2019 독립문 1896년 기공식 장면. 1897년 완 공하였으며 1980 년 서북쪽으로 70m 떨어진 지점 으로 옮김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 안창남이 개벽 1923년 1월호에 수록 서대문형무소 1924년의 서대문형무소 전경. 1923년 경성감옥이 서대문형무소로 개칭 무악재는 인왕산과 안산 사이, 현저동과 홍제동 사이에 자리를 잡고 있 다. 의주와 통하는 중요 교통로이자 서울 시내와 서대문 외곽을 잇는 위 치에 있어 조선시대에는 영은문과 모화관을 세워 중국사신을 맞이하였 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자주독립을 위해 독립문을 건립했다. 조선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1900~1930)이 개벽 1923년 1월호 「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에서 무악재의 풍경을 서술한 글과 영상, 사진으로 무악재의 풍경과 역사를 소개 옥바라지 골목에는 형무소 주 변동네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퇴소자에게 대접하기 위한 두부를 파는 두부장수가 있었으며 인왕산에서 땔나무를 해다 파는 땔나무판매상이 있었고,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등장한 동네주민들은 기차역에서 현저동까지 짐을 들어주 었던 지게꾼과 네모난생철통으로 만든 물통을 지고다니는 물지게꾼, 둥 근 쳇바퀴를 들고다니는 체장수, 징을 치고다니는 굴뚝장이, 대장장이 가 있었다. 기록과 사진으로 옥바라지 골목의 모습을 소개 옥바라지 골목에는 형무소 주변동네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퇴소자에게 대접하기 위한 두부를 파는 두부장수가 있었으며 인왕산에서 땔나무를 해다 파는 땔나무판매상이 있었고,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등장한 동네주민들은 기차역에서 가족들의 고통과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한 을 풀어드리기 위한 헌정의 의미가 있는 디 지털 미디어 아모르프(a-morph)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가족을 옥바라지하기 위해 남은 가족들은 주옥 경의 신문기사(동아일보, 1920.05.14)에서도 볼 수 있듯이 형무소 주 변 동네의 초가집 방 한켠을 빌려 기거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못하면 천막에서 생활해야했으며, 부엌세간은 형무소에 사식을 차입할 때 음식 을 담기위해 사용했던 사기그릇과 양철 물양동이, 작은 솥 뿐이었던 고 달픈 생활상을 소개하고 또한 집에 남겨진 가족들의 고달팠던 생활과 심정을 엿볼 수 있는 화가 양달석의 작품 「망향」을 전시 가족의 수인복을 꿰매고 누빔옷을 만들었던 바느질이라는 행위를 모 티브로 스무명의 퀼트 작가들이 함께 작업한 광목원단 작품을 전시 하여 옥바라지를 해야했던 여인들의 시간을 추념 “옥바라지라는 것은 수감된 가족들이 이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있다는 힘을 주는 일이에요” -퀼터 고은경 전시실 B동 전시실 A동 2 1 3 전시실 B동 전시실 A 동 2. 옥바라지의 삶 2.1 가족과의 면회 조선감옥령 시행규칙 개정의 건 (1928) 철창회고 : 수인의 위안 간수가 문을 열고 “면회”하 는 말은 적어도 출옥이라는 말의 절반만큼 기쁨이 다 (동아일보 1925.07.21) 조선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1900~1930)이 개벽 1923년 1월호 「 공중에서 본 경성과 인천」에서 무악재의 풍경을 서술한 글과 영상, 사진으로 무악재의 풍경과 역사를 소개 1928년 시행된 조선감옥령(朝鮮 監獄令) 시행규칙의 「제 9장 접 견 및 신서」 중 접견(면회)에 관한 9가지 법률을 소개하고, 정이형 (1897~1956)의 부인 강탄탄과 딸 정문경이 서대문형무소에 면 회를 갔을때를 회상한 기록 및 형 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와 가 족들의 면회를 다룬 신문기사와 일화를 통해 면회실의 모습과 가 족들의 심정을 소개 2.2 독립운동가의 편지 나는 평안하고 밖에서 들여 주는 의복과 음식에 다 만족하니 근심하 지 말아라. 어머님이 보낸 귤을 잘 먹었다 고 말씀 드려라. 안창호(1878~1938)가 아들 필립 안에게 보낸 편지, 심훈(1901~1936) 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 정이형(1897~1956)이 족형 정지강에게 쓴 편 지, 지봉하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 등,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이 가족들의 걱정을 위로하고 옥중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하며 주고받은 편지를 소개 3.5 사진으로 보는 무악동의 모습 광복이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대문형무소 주변 동네 풍경의 변화를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