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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잎으로 칼을 얻다. 3.1운동 이후 이회영은 베이징과 텐진 등지에서 지속적으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신채호, 김창숙과 함께 베이징 독립운동세력을 이끌었다. 조선 '갑족'이라고 불렸던 이회영식구들은 가장 괴롭혔던 것도 서간도 시절보다 더한 가난, 배고픔, 질병이었다. 이레에 세끼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발가락이 나오는 신발을 신고 다녀야 했던 이회영은 춥고 배고픈 겨울밤을 견디기위해 때로 피리(대금,퉁소,단소)를 불곤했다. 사군자(매화,난초,국화,대나무)중 으뜸이라는 묵란 또한 잘 쳤다. 추사 김정희에서 제자 흥선대원군 이하음으로 이어지는 필법을 익힌 이회영은 빼어난 묵란 솜씨를 지니고 있었다. 이 묵란을 내다 팔아 이회영과 동지들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곤 하였다. 먹으로 난초를 그리는 묵란 역사는 애초에 나라 잃은 선비의 기상을 말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회영은 이를 잇고 있을 뿐만 나이라 난잎을 칼로 바꿔냈으니, 예술혼과 행동이 일치를 이뤄낸 예행합일(藝行合一)의 정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