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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산농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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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0일. 문호리에서 수백명이 참가한 가운데 양평지역 최초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1일/4월2일. 4월1일 양서면 도곡리일대에서 2,000여명의 군중이 모여 대규모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는 전날 강하면 시위를 주도했던 최대현이 참가하여 2,000여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헌변분견소 앞으로 나아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튿날인 4월2일에는 여운형의 친척인 여운긍,여광현등이 추도하는 가운데 1,000여명의 군중들이 양서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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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1일. 강하면에서는 진행된 만세시위는 한말 오위장출신으로 1870년 군대해산 후 의병운동을 전개한 68세의 최대현이 주도했다. 최대현은 윤기영, 이보원, 신우균등과 함께 면사무소앞에서 태극기를 위날리며 3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29일. 교평 나루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윈느 양근리 장터에 가기위해 모인 군중들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났다. 나루터에서 누군가가 '조선의 도립은 세계 각국에서 이미 승인했다.'고 하는 말을 신석영이 태극기를 뽑아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가 약 100여명의 군중이 호응하여 만세를 부르면서 나루터는 시위장으로 바뀌었다. ◆3월24일. 갈산면 장날을 진행된 시위는 연희전문학교 서기 이진규가 양평으로 오면서 시작되었다. 이진규는 장터에 모인 군중들에게 '독립의 시기는 왔다.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만나기 어렵다'고 연설하고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여기에 곽영준, 한창호, 김경석, 서상석, 김석봉, 한봉철등이 적극 호응하여 시위를 이끌어 1,000여명의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장안으로 행진하자, 헌병들이 출동하여 이진규와 곽영준을 체포.구금했다. 이에 군중들은 헌병분견소앞으로 몰려가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으며, 수백 명의 군중들이 갈산면사무소,양평군청,양평우편소로 처들어가 서류,장부 일부를 폐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