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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파하였다. 이들은 대구 밀양 양산등지에 본거를 두고 영남일대를 무대로 모금활동을 전개하니 공은 홍종락 양한위 권충락 이재술 김종만 권정락등과 함께 달성 영천 청도등지에서 활약중 홍종락이 1922년 1월에 대구에서 이재술 김우창이 5월에 군위에서 왜경에 피체되었으나 공은 남은 동지들과 삼엄한 경찰망을 뚫고 계속 활동하여 다액의 자재와 타재를 조달 송금하였다. 공은 누대 주손으로 상봉하솔하는 처지임으로 혈육지친에까지 비밀을 고수하고 가산을 탕진하면서 갖은 역경과 구난을 무릅쓰고 오직 조국광복을 위하여 투쟁을 줄기차게 계속하였으나 동지들은 연이어 피체투옥되고 수사망은 더국 위축되니 끝내 이루지 못한 한을 품고 비장한 결의를 하고 조용히 순절하였으니 공의 업적과 정신은 우리독립운동사에 별로서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길이 빛날것이다. 공의 초휘는 재수요 자는 치실이요 묘는 학미산 선영하 유좌원이다. 계의 신라왕자 달성대군의 후로 려조예부상서 휘 선이 함양군에 수봉되었으니 이분이 함양박씨의 1세조이다. 용래로 충의현관과 대를 이었고 17대조 휘 성양 호 금은 선생은 포은선생의 고제로서 조선개국초 왜구정벌에 위훈을 세웠고 관이 이조참판 증 이조판서로 시는 정헌이니 명금서원에 존향되었다. 13대조 휘 승 호 학천은 수의부위로 분종의 조이시다. 고조 휘 돈길은 증 좌승지요 증조 휘 문달은 증 이조참판이요 조 휘 정운은 수순으로 가선대부 이조참판이요 고 휘 세환 호 이산은 이만포 곽면우 장회당 제 선생의 문에 사사하여 문집 10권을 남긴 거유이시다. 비는부림홍씨 건우의 따님으로 규덕이 높았다. 배는 부림홍씨 규수의 따님으로 현완해서 부공몰후 47년간에 시봉양지로 일관하고 가세 복고에 喫苦(끽고)하다가 1974년 갑인7월 17일에 졸하니 묘는 만석산 묘좌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