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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전개하여 민족 차별이 심한 일본 교사들을 추방하는 등 항일활동의 선봉이 됨. 1940년 민심회의 총책으로서 동포 학우들의 독서회를 20개 조직으로 확대하고 총 경도 유학생회로 발전적인 개편을 단행 이 회가 후일 전일본 조선 유학생들의 구심체가 됨. 1941년 반전 일본인 학생들과 연합하여 경도 제국 대학 독서회 사건의 도화선을 만들고 동아 연맹과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강연회를 수차례 개최하여 일본 군국주의의 허위성을 갈파하고 침략전쟁의 부당성을 고취함. 1942년 일제의 검거가 심화되자 구주 지방의 탄광지대로 변신하여 조선인 광부들에게 항일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지하조직을 통해 일본으로 잠입한 항일 독립운동가들에게 은신처의 주선 활동비의 지원 등 헌신적 투쟁을 계속함. 1942년 10월 8일 경도 중학생 근로 봉사 불참 운동 및 일본 천황의 비존엄성과 불경심을 역설하던 중에 일경에 피검. 압수된 서신 일기 기타 문서 등을 물증으로 일본 특별 고등경찰의 가혹한 고문을 받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불경죄란 형명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경도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3년 7월 11일 복강형무소로 이감되어 1944년 9월 16일 만기 출옥함. 해방 후 교육계에 투신하여 육영에 전념. 1960년 안동 김기형 공의 2녀 정환과 혼인하여 1남 2녀를 생육함. 1977년 12월 13일 조국의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애국지사로서 대통령 포상을 받음. 1988년 3월 16일 숙환으로 자택에서 향년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