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page


322page

우리 의사 김성국, 의부 이혜경 두 분이 여기 누우셨다. 여기는 우리 겨레에게 바치신 의열의 체백들을 받드는 대구시 신암동 산의 묘지요. 의사는 그 선대는 경주인으로서 양산 상북면 상삼리에 살아 1891년 3월 5일 의사를 낳았으며, 고의 휘 량희라. 1910년 일본의 침압에 인한 합병이라는 민족적 비극이 일어났다. 그는 경신학교 재학 중 비분을 이기지 못하여 애국지사 및 학생들과 구국밀모를 하다가 1913년 적옥에 1년 동안 유인되었으며 1919년 민족독립선언의 즈음 그는 세브란스 의전 재학 중 미리 원산 및 부산의 애국자들에게 연락 책임을 띠고 밀방하여 함께 일어나도록 정약한 뒤 3월 1일 세브란스 학생을 이끌어 탑동공원의 선언과 시가지행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