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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김복한(1860~1924) "나는 대대로 녹을 받은 신하의 후손으로 임금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평소 죽음으로써 보답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갑오년(1894) 6월 이후에는 시골에 칩거하여 평생 자정(自靖)하고자 하였더니, 지난 해(1895) 8월에 대변(大變,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이르러서는 원통하고 분통함을 이기지 못하여 조금도 살 마음이 없던 중, 다시 11월 15일의 사변이 일어났다. 이 역시 흉악한 역신(逆臣)들의 소행이 아닐 수 없다. 임금의 욕됨이 이미 극에 달하였으니 신민(臣民)된 자의 박절한 정이 격동하여 시세와 역량도 헤아리지 못하고 복수하고 설치(雪恥)할 계획을 세우고 의병을 일으켰으나 일을 도모함이 치밀하지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만약 가볍게 일으켰다고 죄를 준다면 달게 받겠다." - 선생의 법정 진술 중에서(1896.2.25. 고등재판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