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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 선생은, 1919년 4월 3일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미량리(美良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도되었다. 사전에 정보를 탐지한 일본 헌병들은 경계를 강화했다. 4월 5일 오후 3시 정산면(定山面) 정산 장날을 기해 군중 700여 명이 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다.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정산 장터 만세운동은 이튿날 정산면과 목면(木面) 일대로 이어졌다. 4월 6일 운곡면 신대리(新垈里) 일대에 500~6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이들은 너나없이 독립을 외쳤다. 시위 군중은 고지(高地)에 올라 만세를 불렀다. 4월 8일 만세운동은 운곡면과 비봉면(飛鳳面)에도 군중 500~600여 명이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화톳불을 피우고 만세를 외쳤다. 일본 군경은 무력을 앞세워 시위대 진압에 혈안이 되었다. 이동하는 이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4월 16일 청양헌병분견소(靑陽憲兵分遣所)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70도(度)를 즉결처분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자료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