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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월 스님과 영원사 영원사 출신인 백초월(白初月) 스님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불교 독립운동가이시다. 초월스님은 경남 고성군 영오면에서 1878에 출생하셨는데, 14세의 나이로 이곳 영원사로 출가하셨다. 해인사의 강원.선원에서 수학을 하셨으며, 지리산 일대의 의병활동을 지켜보며 민족의식을 고취하셨다. 30대 초반에 영원사 조실(祖室).강백(講伯)이셨고, 범어사와 해인사의 강사를 역임하셨다. 그리고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학림의 불교 강사로 내정될 정도로 당시 최고의 강백이셨다. 1911년 이곳 영원사가 화재로 전소되자, 영원사 주지로 재건불사(1914~1917)를 주관하셨다. 그 이후에는 용화사(법주사 청주 포교당)에서 포교에 전념하셨다. 이때, 3.1운동(1919)이 발발하자 분연히 일어나 서울로 올라가 진관사에 머물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 불교계 민족대표이셨던 백용성스님과 한용운스님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시자, 초월스님은 중앙학림에 불교의 독립운동본부(민단본부)를 두고 학인스님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하셨다. 천은사, 화엄사, 통도사, 범어사 등에서 모은 독립자금을 상해의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에 제공하셨고, 불교청년들을 상해 임시정부와 만주의 독립군에 보내셨다. 독립운동을 하시다 일제에 체포되어 악독한 고문을 받았으나, 결코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다. 초월스님은 출옥하신 이후, 불교사상에 근거한 일심교(一心敎)라는 항일 결사단체를 만드셨고, 동학사, 월정사, 봉원사에서 강사를 하시면서 스님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셨다. 1939년 10월, 용산에서 만주로 가는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 낙서를 쓴 사건으로 서대문형무소에 2년 6개월 동안 수감되셨는데, 출옥한 후에도 독립자금을 모금하시다 청주감옥에 수감되셨고, 안타깝게도 고문의 후유증으로 1944년 6월 29일, 옥중 순국하셨다. 초월스님은 입적하신 그날까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으셨던 참다운 보살, 큰스님이셨다. 2016년 11월 17일, 진관사에서 3개 자치단체인 고성군(옥찬사, 출생), 함양군(영원사, 출가), 은평구(진관사, 독립운동)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백초월 스님 선양사업을 공동으로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