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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득행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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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하여 항일운동에 분발하셨고 서기 1927년 6월 10일 만세운동에 절규하시었으며 1차 운동이 미흡하야 재차로 대대적인 운동을 전개키 위하여 동지 규합 협성학교 학생대표로 선출 거사 활동 중 일경에게 피체되여 15일간의 유치외 극고를 당하시고 기소 유예로 출옥하시였으며 1개월간 정학 처분을 당하셨으며 연희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하시고 독립운동 자금 조성 목적으로 임천상사 합자회사을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하시여 경영하시다가 서기 1932년 임신 4월 21일에 졸 간정침하시니 방년 29세시라. 오호라. 장간 부여군 충화면 만지리 낙산 선영하 간자지원하니 조객수군에 필지하야 통곡을 불금하다. 배는 배 경주최씨는 부덕이 가상하고 예절이 단정하였으며 자녀 훈육과 종족간 돈목을 일무방인이러라. 서기 1944년 갑신 4월 22일 향년 44세로 세상을 마치시다. 묘는 부군 옆에 합폄 합장 안장하였다. ... 중략 ... 공의 덕망이 돈후함으로 후예가 번창하여 여운이 무궁함을 미진 기표함은 가석이로다. 묘역을 정화하여 비문을 청원하옵기 위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