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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國志士醒菴李喆榮先生追慕碑(애국지사성암이철영선생추모비) 이철영(李喆榮)은 충남 공주(公州) 사람이다. 부여(扶餘)에서 서당 훈도로 있던 그는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늑결되자 일제의 모든 정책을 거부할 것을 촉구하는 창의문(倡義文)을 지어 배포하였다고 한다. 또한 일제의 국권침탈이 날로 심해지는 것을 보면서 통분한 마음을 품고 있던 그는 1909년 일제가 주도하는 호적(戶籍)에 입적할 것을 거부하고 개항 이후 일제의 침략과정을 열거하며 통박한 서한을 작성하여 부여주재소를 통해 일본정부에 보내고자 하였다. 일경들은 갖은 협박과 회유로 입적(入籍)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그는 "차라리 죽어 조선의 귀신이 될지언정 살아서 일본백성이 되지 아니하리라(寧死爲朝鮮鬼 不欲生爲日本民)"고 하며 이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수차에 걸쳐 일경의 취조를 받았으나 그때마다 천하의 도의(道義)에 입각하여 일제의 침략행위를 준렬히 꾸짖었다. 그의 일제에 대한 이같은 저항은 19번에 걸쳐 계속되었으며 구금된 것도 70여일에 달하였다. 그는 투옥되어서도 항상 선비의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애국사상을 고취하는데 힘썼으므로 일경들조차 "진실로 천하제일의 남아"라고 존경할 정도였다. 그는 이러한 옥고의 여독으로 1919년 12월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