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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장 제741호 / 청양군 목면 본의리 임봉안 / 1897년 8월 9일생 귀하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찾기 위하여 역사상 가장 찬란한 기미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애국애족정신을 역역히 발휘하여 한민족의 독립정신과 민족정기를 세계만방에 선양하는데 공로가 지대하였으므로 이를 높이 찬양하고 이에 표창하나이다. 1967년 4월 14일 청양군수 전준기 愛國志士 林鳳安(임봉안) 평택임씨로 충절공 8급 35대손으로 1897년 8월에 태어나 슬하에 2남 3녀를 두셨다. 공께서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기미독립만세운동에 앞장 서시다가 부상을 당하셨고 그로인한 고난과 역경 그리고 일본 징용 등 그 시대의 아픔을 모두 겪으시며 꿋꿋이 일어서신 분이시다. 본면 면지의 독립운동(기미만세부상자)에 등재된 글을 옮기면 공께서는 기미년(1919) 4월 5일(음 3월 5일) 정산에서 독립만세 시위 중 일본 헌병의 흉탄에 순국하신 권흥규 의사의 시신을 안심리 본가로 운구하려고 상여를 맨 주민들과 안심리 강치 부근에 이르렀을때 공주 헌병대에서 긴급히 출동한 일본 헌병들이 발포한 총탄에 왼손 중지와 약지에 실탄이 명중되어 부상을 입게 되었다. 부상을 당한 공께서는 일본 헌병이 시위에 가담했던 사람 중 극렬히 행동했던 주동자 총상을 입은 자 등을 추적하고 있어 이에 공은 권흥규 선생의 장례가 끝나는 것을 보고 집을 떠나 천안시 광덕면에 있는 광덕사(사찰)에서 1년이 넘는 은신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일본 헌병에게 붙잡힌 분들은 보안법 위반 죄로 사법처리되었으나 공은 잡히지 않고 피신하였기 때문에 부상은 당하셨으나 처벌은 받지 않아 그 기록이 없고 생존자들의 구전으로만 위와 같은 사실이 전해오고 있다가 1967년 4월 14일 청양군수로부터 "3.1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청양군 표창록 제741호에 의하여 표창받은 바 있다. 공께서는 총상으로 인하여 평생 왼손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사셨으며 또한 1943년에 위와 같은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늦은 나이인 47세에 일본 청삼현에 징용으로 글려가는 2년 3개월 여 노역에 시달리고 살아 돌아오셨으나 심신이 미약하여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셨던 "애국지사"이시다. ㅇ 목면면지 기미만세부상자에 등재 ㅇ 정산 3.1만세운동탑 만세운동 선현에 등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