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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 선생 (勉菴 崔益鉉, 1833~1906) 조선 말기의 문인, 학자, 의병장. 1833년 경기도 포천 출생으로 23세에 명경 문과에 급제한 이후 1873년 41세에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癸酉上疏,계유상소) 대원군의 세도 정치가 막을 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1876년 44세에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도끼를 들고 광화문 앞에 나가 조약의 부당함과 일본사신의 목을 베라는 상소를 올림(持斧上疏.지부상소) 이후 칠갑산이 있는 청양땅에 와서 나라를 근심하며 지내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6년 74세에 전라도 태인현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순창에서 관군과 대치하다 우리 동포끼리 싸울 수 없다고 스스로 체포되어 일본 대마도에 이감되었으나 '왜놈 땅에서 난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단식을 하다가 그 곳 감옥에서 순국했다. 1962년 그의 애국혼을 기려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중장이 수여되었다. 1장 1876년 도끼를 들고 광화문에 엎드려 상소를 올림(持斧上疏.지부상소), 2장 1906년 태인의 무성서원에서 의병봉기, 3장 1906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대마도로 압송되는 것을 슬퍼하는 백성들(조우식, 日星錄(일성록), 1932, 국립중앙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