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page

그 밖에 구체적인 사항은 권동진, 오세창, 최린에게 위임되었 다. 권통진과 오세창은 천도교 내부의 일을, 최린은 천도교 외부 와의 관계를 담당하여 2월 초순부티 민족대연합전선올 결성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다른 종교 지도차들과 접촉하기 시작하였다. 최 린이 앞장 선 천도교측은 2월 상순 경에 최남선, 송진우, 현 상융 둥과 재동 차랙에서 극비 리에 수차례 회합을 갖고 운동계획 에 대해 토론하였다. 그들은독립운동올대중화하기 위해서는무 엇보다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대중적 인물틀을 전변에 내세우 지 않으면 곤란하디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하여 대한제국시대 구관료계의 윤용구(Jl" JfJ求), 한규설(韓圭禹) , 박영효(朴泳孝) , 윤 치호(J~致붓) 퉁과 접촉하여 그들올 민족대표로 추대하려 하였 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유보 또는 거절의 반웅을 보여 크게 실망 하였다. 구관 명사들올 접촉했던 것은 당시 종교계 대표들의 명 망과- 위상이 대중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만하지 못했던 현실에서 나온 고러였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너 무 약체여서 대중효}를 기대하기에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편흐로는 독립운동가들 대부분 활동에 제약올 받아 만주니- 상 헤, 미국 퉁에 나가 활동하고 있었고 종교인들은 우선 집회에 상 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앞장설 수 밖에 었었다. 최린은 결국 “독랩운동의 신성한 제전에 늙은 소보다 어린 양 이 좋다”는 말로 자신들이 대표로서 나서기로 하였다. 며칠 뒤 최 저11부 총심 77